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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 완성 10km 달리기

-. 준비 없이 비를 만난 것처럼

by 블링블링마블링 2021. 1. 28.

-. 준비 없이 비를 만난 것처럼

철원 평야에서 군생활을 한 홈즈는 부대원들이 인정하는 몸이었습니다.

군대 다녀온 남성들은 잘 아시겠지만, 군대에서는 모두 한 몸 하지 않았습니까?

한 선임은 홈즈를 이름 대신 어깨라고 불렀는데, 그 정도로 어깨가 넓었다는 말입니다.

 

또 한 선임은 말근육이라고 할 정도로 하체가 말처럼 탄탄했었고,

다른 선임은 해부학 하기 딱 좋은 근육이다라고 했습니다.

아쉽게도 지금은 그런 말을 들을 수 없습니다.

 

전역 후 복학을 앞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간과의 싸움을 하고 있을 때 둘째 누나의 부름이 있었습니다.

남는게 체력이지 않냐며 직장 동료들과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는데 같이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10K를 뛰어 본 적은 없지만 군장을 지고 30~40K를 걸어 봤던 터라,

뛰어서 10K는 식은 죽 먹기겠거니 생각하고 대회에 참여했습니다.

러닝화도 하나 얻어 신어서 기분도 좋았습니다.

 

대회 당일 잠을 깨는 둥 마는 둥 누나 차에 실려 대회장으로 갔습니다.

대회 준비는 전날 다 해두어서 챙길 건 별로 없었습니다.

정신만 챙기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대회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와 함께 페이스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인파에 휩쓸려 뛸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일이 하나 둘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배가 아파왔고, 참을 만 하면 배가 고프고, 또 다리에 쥐가 나려고 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러다가 죽을 수 도 있겠다.

상태가 얼마나 좋지 않았으면 지나가는 아저씨들이 괜찮냐고 한 마디씩 하고 가셨습니다.

겨우 겨우 사태를 수습하고, 5키로 지점에서 바나나며 초코파이를 배가 부를 때까지 잔뜩 먹은 뒤 기운을 차려 겨우 10K를 완주하였습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완주 기록은 1시간을 훌쩍 넘었던 것 같습니다.

 

준비 없이 비를 만난 것처럼, 준비 없이 대회를 맞이 한 홈즈는 자신에게 엄청난 실망을 했습니다.

나름 육상에 자부심이 있었고, 남들이 인정하는 체력도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10K에 나자빠지다니.

그때부터 마라톤에 대한 관점을 달리 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과신은 목표한 대로 결과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과 상대에 대한 편견은 자신에게 큰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님을 한번 더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자는 토끼 한 마리를 잡더라도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